팔레스타인 문제.

오늘날 아랍과 서구권 갈등의 핵심은 석유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1차 세계대전 직후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 당시까지 팔레스타인은 동맹국의 일원이었던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에서 수세에 몰리던 오스만은 대륙지배권을 상실하고 있었다. 당시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독립요구가 전쟁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오스만과 대립 중이던 영국은 팔레스타인에게 접근해 독립을 조건으로 오스만에 대항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맺게 된 것이 후세인 맥마흔 조약이다. 한 편 70년경 멸망해 나라없는 인종이 된 유대인들은 러시아의 학살이 자행되는등 세계적으로 인종적 핍박에 놓여 있었다. 유대인들은 원래 자신들의 본토였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것을 기원하게되고 유대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이 강력한 설득력을 엊게 된 것이다. 당시 로스차일드등으로 대변되던 유대인의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이들또한 자신들의 자본을 활용해 영국과 교섭을 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자치권을 약속하는 벨푸어선언을 하게되어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게 된다. 게다가 프랑스와 사이크스 피코 비밀조약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영국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어 자신들의 제국주의 확장 의도를 보이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종료후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아랍권이 공감을 받지만 영국은 산레모회의를 거쳐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공고히 한다. 이 떄 영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유대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아랍의 분노 시대가 열리게 되고 독일의 나치등장과 함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가 급증하게 되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갈등 양상이 전개된다. 아랍의 유혈폭동에 영국은 유대인들의 이민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마침 2차세계대전이 발발해 소강상태에 머물게 된다.2차세계대전 종료 후에는 이 지역문제의 키를 잡게 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 문제를 유엔에 넘기게 되고 연방안과 분할안이 대립하게 되는데 이 때도 유대인들과 유착관계인 미국등의 주도로 분할안이 채택되게 되고 1948년 드디어 이스라엘이 건국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이 치솟게 되고 네차례의 중동전쟁과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같은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지속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랜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라빈총리가 주도하여 땅과 평화의 교환이 추진되기도 하였으나 라빈이 암살되고 아라파트가 사망한 후 각 각 강경파가 집권한 두나라의 오랜분쟁은 그 해결이 요원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