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스라엘 편인가 팔레스타인 편인가?

이 글은 파키스탄계 캐나다인 작가, 약사인 ‘알리 A. 리즈비’가 허핑턴포스트US에 쓴 블로그 ‘7 Things to Consider Before Choosing Sides in the Middle East Conflict’를 번역한 글입니다. 알리 A. 리즈비는 ‘무신론자 무슬림’입니다.

가자지구 분쟁에서 한쪽 편을 들기 전에 고려해야 할 7가지 사항

당신은 친유대인인가 아니면 친팔레스타인인가? 난 오늘 양쪽 모두를 편든다고 비난받았다.

‘친유대인’이나 ‘친팔레스타인’ 같은 언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끈질긴 부족(部族)적 면모를 나타낸다. 다른 많은 국가 중에서도 이런 단어로 사람을 구분하는 곳은 몇 없다. 왜 하필이면 이 두 국가일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둘 다 매우 복잡한,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나라이면서도 아주 비슷한(따라서 분열을 자초한) 종교를 가진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을 옹호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대부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물론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왜냐면 그런 관점에서는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부족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얼마나 깊으냐 아니냐의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친팔레스타인 지지자가 만약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가족에서 태어났다면 그도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했을 테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원칙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느냐는, 그 사람이 어디 태생이냐는 태생적 우연에 일치해서 결정된다. 그러니 아무리 우리가 논리적으로 분석해봤자 중동분쟁은 원천적으로 부족적인 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 지지하는 편을 정하는 행동은 이런 분쟁을 더 부채질하고 사람들을 더 양극화시킨다. 그리고 가장 불행한 것은 결국 모두가 손에 피를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것을 결정하기 전에 아래 7가지 질문을 고려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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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이 개입되면 왜 모든 게 더 악화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가자에는 이미 700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전 세계의 무슬림 인구의 정신이 번쩍 깼다. 그렇지만 꼭 많은 피해자 수 때문일까?

시리아 대통령 바샤 알 아사드는 지난 2년 사이에 대부분 무슬림인 자기 나라 국민을 18만 명이나 사살했다. 지난 20년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해된 총인구보다 더 높다. 또 ISIS(이라크에 새로 선포를 선언한 이슬람 국가)는 지난 두 달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수천 명을 죽였다. 탈레반도 수천 명을 죽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아랍 무슬림이 50만 명의 흑인 무슬림인을 죽였다. 이런 목록은 끊임이 없다.

보통 때는 이렇게 반응이 전혀 없다가 가자지구의 문제에 대해서는 수니파든 시아파든 모든 무슬림이 자기의 의견을 맹렬하게 표현한다. 최신 사망자 수, 끔찍한 사진 같은 것들이 소셜미디어에 매일매일 즉각 올라온다. 단지 희생자 수가 중요했다면 다른 사건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유발하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된 건가?

내가 만약에 시리아의 아사드나 ISIS의 단원이었다면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BBC 기사에 따르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처참한 어린이들 사진 중의 일부가 정작 시리아 내전 사진을 퍼온 것이다. 태반의 경우 같은 무슬림인 아사드 손에 죽은 아이들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사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옹호하는 이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자신들을 옹호하는 편이 죽인 죄 없는 어린이의 사진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행위처럼 비겁한 것이 있을까?

이스라엘 군인의 무모함과 태만 그리고 때론 잔인한 행위에 대해 빌미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슬림의 반이스라엘적 태도는 꼭 사망자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나처럼 중동 또는 무슬림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만약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다 포기하고 1967년 전의 상황으로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에 다 넘긴다고 하자. 그럼 하마스가 더는 갈등을 안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가? 이 문제가 오로지 영토의 문제이고 그들이 유대인이란 사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영토점령이 부당하고 불법인 게 사실이다. 또 인권 차원에서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그렇지만 반면에 그들을 대척하는 세력의 깊은 반유대주의 이념도 부인할 수 없다. 아랍/무슬림 사회에 몇 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다 안다. 따라서 촘스키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쪽 다의 문제다.

2. 왜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종교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걸까?

중동분쟁 기원에 대해 세 가지 널리 유포된 설이 있다.

설 1: 유대교와 시오니즘은 아무 관계가 없다.
설 2: 이슬람교는 반유대주의나 지하드운동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설 3: 이번 분쟁은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난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것이지 유대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싶다. 현재 상황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아래 구약성경 구절이 우연일까?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대서양)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마라.” 출애굽기 23:32-33

또 이건 어떻고?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신명기 1:8

얼마든지 더 있다. 창세기 15:18-21과 민수기 34에는 영토와 경계에 대한 글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즉, 시오니즘은 유대교의 ‘정치화’나 ‘왜곡’이 아니라 그 종교의 부흥을 뜻한다.

또, “무슬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아래 코란 구절은 의미 없는 문구인가?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크리스천을 동지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그들끼리 동맹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들과 동지가 되면 그들에게 속하게 되느니라. 알라는 그런 죄짓는 자를 인도하지 않는다.”

하마스의 설립헌장에 인용된 수많은 하디스 구절은 어떻고? 그 유명한 가카드 나무에 대한 하디스 구절에 따르면 무슬림에게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제발 나에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수백, 수천 년 전, 즉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설립되기도 전에, 또 그 이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기도 전에 이런 문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고 종교와 관련이 없다든지 적어도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구절에 대하여 단순히 눈을 굴리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번 분쟁에 관련된 쌍방의 대다수는 이런 문구를 아주 심각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슈를 인정하고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지 않는가? 한 번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서안 지구 점령에 대하여 이해될만한 세속적인 논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신앙을 부인하고 오히려 정치행태만 비난하는 행위는 아마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그래서 믿는 이에 대한 모욕이 안 되게 하고자 하는 걱정에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비인간적인 이념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인가?

사람들은 별의별 믿음이 다 있다. 지구가 납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조작이었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질 권리를 존중할 수는 있지만, 그 믿음 자체를 존중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2014년이다. 꼭 누구의 정치사상이나 철학적 이상을 존중할 필요가 없듯이 종교도 더는 ‘존중’할 필요가 없는 시대다. 인간은 각자 권리가 있지만, 이념은 권리가 없다. 정치 종교의 분리 차원에서 자주 인용되는 아브라함의 종교 철학은 옳지 않고 잘 못 이해되기 쉽다. 왜냐면 아브라함의 모든 종교철학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3. 이스라엘이 왜 일부러 민간인을 죽이겠나?

거의 모든 사람을 흥분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이 문제다.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죄 없는 가자 주민들의 죽음은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주의로 해변에서 놀던 어린이 4명이 죽은 것은 더더군다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잠깐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이 ‘일부러’ 왜 민간인을 살해하겠느냐는 것이다.

민간인이 죽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무슨 괴물처럼 부각된다. 가장 밀접한 동맹국의 지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다치고 죽은 자의 모습이 미디어 화면에 넘친다. 뉴욕에서 노르웨이까지 반이스라엘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만 간다. 더군다나 비교적 낮은 이스라엘 피해자수(뒤에 더 구체적으로 설명)를 감안할 때 팔레스타인을 향한 공격이 불균형하다고 계속 지적받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인의 죽음은 하마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이는 게 어떻게 이스라엘 측에 득이 될 수 있느냐 말이다.

정말로 민간인 살해가 의도였다면 현재까지의 행동으로 봐서는 전혀 소질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2주가 걸렸지만, ISIS는 겨우 이틀간에 7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ISIS나 하마스에 이스라엘의 공격력, 즉 무기와 육군 공군 세력이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이스라엘은 옛날에 결단 났을 것이다. 거꾸로 이스라엘이 정말로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들었다면 단 하루에, 그것도 공중에서 초토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비싸고 또 자체 군사력을 위태롭게 하는 지상전을 선택했다.

4. 정말로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이용하고 있나?

하마스의 계략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에게 물어보자. 그는 “로켓을 쏘아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팔레스타인의 피와 맞바꾸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는 것은 더는 추측이 아니다.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리는 가자의 국영방송에 인간방패 작전이 이제까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런가 하면 유엔의 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UNRWA)은 두 개의 학교에 숨겨진 폭탄을 지난주에 발견하고 하마스를 맹비난했다.

현재 하마스는 수천 개의 폭탄과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퍼붓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입는 피해는 아주 작다. 그런데 이런 폭탄을 발사하는 지점이 학교나 병원을 포함한 인구밀집 지역이라는 것이다. 적에게 별로 피해도 주지 못하는 미사일을 계속 쏘아대서 자체 주민에게 오히려 위험이 오게 하고 정작 공격을 받으면 민간인을 방탄으로 삼는 것은 무슨 전략인가?

이스라엘군은 폭격 전에 대피하라고 경고 방송을 하건만 왜 하마스는 주민에게 대피할 생각 말고 그 자리에 남으라고 하나? 그건 민간인이 죽으면 하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하마스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존재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간인 시체다. 학교의 폭탄. 아이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세계의 동정을 산다. 이런 행동은 곧 아이들을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아도 하마스의 행태를 혐오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파타(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해 온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는 대립 주체이지만 적어도 도덕적 차원에서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하마스는 조금의 도덕성도 없다.

5. 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가자 ‘점령’을 중단하라고 하나?

그 이유는 사람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2005년에 가자 점령을 중단했다. 한 명의 군인도 안 남겨두고 그 지역을 빠져나왔다. 모든 이스라엘 거주지를 분해하고 자기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울부짖으며 맞선 유대인을 강제로 옮겼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가자를 둘러싼 경계, 해안지대 그리고 영공은 계속 이스라엘이 관리했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역사적인 배경을 감안할 때 꽤 획기적인 첫 단계였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모든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대피시킨 후엔 가자의 경제를 활성 시키고자 경계도 열었다. 그리고 수년간 성공적으로 꽃과 과일 수출을 주도하던 3,000개의 온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하마스는 학교나 상업은 물론이고 기초 인프라에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수천수만 개의 무기를 감출 수 있는 대규모 터널 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중 큰 부분이 이란과 시리아에서 넘어온 최신 무기였다. 모든 온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렇다고 하마스가 민간인을 위해 방공호를 만들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몇 개만 구축했는데 그건 하마스 지도자들이 공습을 피할 수 있게 한 준비 조치였다. 민간인에게는 이런 방공호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폭격 시에 대피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2005년은 가자에게 매우 좋은 기회였다. 즉, 지금의 반이스라엘 무기창고로서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번성하며 서안지구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기회를 하마스는 완전히 낭비했다.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인 파타가 하마스를 혐오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6. 왜 이스라엘보다 가자에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은가?

이스라엘 민간인 피해자가 더 낮은 이유는 이스라엘 주거지에 떨어지는 폭탄과 미사일의 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정부가 주민들을 더 잘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발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하면 우선 경보음이 울린다. ‘아이언 돔’이라고 시민 안보령이 개시되면서 지역주민들을 빨리 방공호로 대피시킨다. 그런데 이스라엘 측에서의 폭탄이 가자를 향하면 하마스는 주민들에게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맞서라고 지시한다.

즉, 이스라엘 정부는 주민들을 겨냥한 폭탄이 날아올 때 그들에게 빨리 피하라고 지시할 때 하마스는 주민들을 겨냥하지도 않은 폭탄이 날아올 때 오히려 그들에게 폭탄에 맞서라고 지시한다.

통상적인 변명은, 하마스는 재정이 나빠서 이스라엘처럼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할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 문제보다는 뒤섞인 하마스의 우선순위(위 5번에 설명한 이유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의지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폭탄과 미사일을 사들이고 터널을 뚫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하마스는 다른 무엇보다 그런 전쟁 물자를 먼저 준비했다. 그리고 재정 차원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다들 비난하지만, 하마스에게도 도움을 주는 수많은 석유 부호국이 있다.

민간인 피해가 감소한다는 것은 하마스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홍보전쟁의 주요 소재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의미다. 하마스는 두 가지 사항이 정 반대가 되기를 바란다.

7. 하마스가 그렇게 악하다면 왜 모든 사람이 친이스라엘이 아닌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엄청난 비난을 자초한다는 데 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부족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가자를 겨냥한 폭격을 아랍인들이 9/11 테러를 축하하듯이 반긴다유엔 보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고문하고 방패로 이용한 사례가 있다. 또 청소년을 폭행하고 무모한 공습도 계속하고 있다. 강간만이 원수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망언하는 이스라엘 학자도 있다. 그리고 일부 이스라엘 사람은 죄 없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죽음을 대놓고 좋아한다. 사실 이런 행위는 양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65년이 넘게 서로를 증오하도록 아이들을 양육한 결과다.

자신들은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근거 있는 말이 되려면, 자신들이 하마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일종의 국가적 자살의 길로 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점령과 영토 확장 때문이다.

영토 확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행위다. 아무도 그 이유를 이해 못 한다. 닉슨에서 오바마까지 거의 모든 미국 정권이 분명하게 반대해 왔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라는 핑계 외에는 어떤 타당성도 없으므로 그 행위가 종교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신빙성이 없다.

점령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 영국계 미국인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이 참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야만성, 신권정치, 핵무기 신권정치를 반대하는 축에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함께 서고 싶다면 절대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해서는 안 된다. 아주 간단하다. 유럽식이나 서구식 나라를 지향할 수는 있지만, 통치를 거부하는 사람을 억지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영토를 훔치는 행위를 계속해도 안 된다. 더군다나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의 입장을 잘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난 역사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무슨 늑대 무리 속에 갇혀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식의 발상을 부정한다. 그 나라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난 잘 안다. 엄청난 폭력과 탈환의 내막. 난 그런 지식의 포로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2005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완전 철수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추구하지 못하면(하마스 때문에 세 국가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달갑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 국가로 남을 것인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미국 외무장관 존 케리가 이스라엘이 미래에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을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계산이 뻔하지 않나. 유대인이 대다수가 아닌 지역에서 유대인 점령을 고집한다면 몇 가지 선택권이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탐탁지 않다.

***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주권하에 있다. 내 고향 파키스탄이 회교도 인구를 고려해 인도와 분리됐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1940년대 영국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도려내어 만든 국가다. 수백만의 인구이동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다. 이미 여러 세대를 거쳐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시민들은 정말로 그 땅을 조국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잔혹한 역사적 행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렇게 배우듯이, 이스라엘 아이들도 팔레스타인을 반대하도록 교육받는다. 이 비극은 양쪽이 ‘부족적’인 태도로 계속 자기편과 다른편을 고르는 한,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은 친이스라엘이나 친팔레스타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비종교적인 세속을 선택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주거지 점령과 하마스를 반대하면, 당신은 친이스라엘인 동시에 친팔레스타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은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편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후무스(병아리 콩으로 만드는 중동의 대표적인 요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즐겨 먹는다)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하라.

[정정 : 마지막 문장에 ‘후무스’에 대한 설명에서, 하마스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필자의 풍자라기보다는 이스라엘과 아랍계 국가들이 동시에 자신의 전통요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라는 독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