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한 어떤 은유 <오마르>

영화가 시작하면 한 청년이 밧줄을 타고 콘크리트 장벽을 능숙하게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청년이 2, 3층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들고, 청년은 반대편으로 미끄러지듯 줄을 타고 내려간다. 손바닥 상처를 슬쩍 바라본 후, 청년은 황급히 좁은 골목길로 도망쳐 한 집에 도착한다. 문을 두드리면 청년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배경으로 한 하니 아부 아사드의 영화 <오마르>(2013)를 보고 나서 떠오른 의문은 팔레스타인 청년 오마르(아담 바크리)가 왜 이 위험한 장벽을 넘어서 여자 친구 나디아(림 루바니)의 집을 찾아가는가 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여자 친구가 이스라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장벽 양쪽 마을의 풍광은 어떠한 차이도 보여주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속 멕시코와 미국 국경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여자 친구 집이 이스라엘 지역에 있다면 좀더 현대적인 건물이나 거리처럼 다른 모습이 나타날 것 같은데, 장벽의 양쪽은 똑같이 오래된 팔레스타인 마을로 보인다.

오마르가 마주한 선택의 딜레마

국경의 장벽은 정치체계나 문화 혹은 경제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모순이 물리적인 형태로 체계화된 것이다. 따라서 장벽의 양쪽은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다른 풍경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같이 경계를 무대로 한 영화들은 둘 사이의 차이를 서사의 중요한 주제로 취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공간적인 체계가 현실처럼 연속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건물 안은 부산에서 찍고 건물 밖은 서울에서 찍어도 공간과 스타일의 연속성이 관객에게 인정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의 공간은 현실이 아닌 서사 논리에서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마르>의 경우, 서사의 근간을 이루는 공간 체계에 대해 관객이 의문을 갖게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와 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았었는지, 하니 아부 아사드는 2015년 1월 <씨네21>과의 인터뷰(991호)에서, 영화 속 장벽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가 아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마을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경계에 설치된 분리장벽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이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인 국가 사이의 장벽처럼 영토와 주권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경계로 쉽게 받아들인다.

서안지구는 우리가 흔히 요단 강으로 부르는 요르단 강(Jordan 江) 서쪽에 위치한 지역을 의미한다. 몇 차례 이스라엘과 주변국 사이에 벌어졌던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은 지중해에 면한 가자지구를 제외하고는 내륙으로 밀려나 서안지구로만 남았다. 1949년에 이루어진 휴전협정 당시에 그린라인(Green Line)이라 불리는 경계선이 그어졌지만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그린라인보다 더 안쪽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가로질러 건설했다.

영화 속, 장벽은 예루살렘의 칼란디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오마르의 언급이 있다. 역사적인 도시 예루살렘은 특히 팔레스타인 거주지역과 이스라엘 거주지역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스라엘이 건설한 장벽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폭력적으로 단절시키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작을 현대의 영역으로만 한정한다면, 그 시작은 키부츠나 모샤브 같은 공동체 정착촌이다. 식민지 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민간 영역에서의 토지의 점유는 1945년 이스라엘의 독립선언을 통해서 국가의 영토로 변환되고,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거주 지역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건설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나 서안지역에 불법적인 점유를 통한 정착촌과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시도를 계속 이어왔다.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들은 벗어날 수 없는 공간적 딜레마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강제하고, 그곳을 벋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오마르는 오랜 친구 타렉(이야드 후라니)과 아므자드(사메르 비스하랏)와 함께 이스라엘 병사를 살해한다. 타렉이 계획을 짜고, 오마르가 차를 훔치고, 아므자드가 총을 쏜다. 이들의 행위는 누군가의 밀고로 발각되고, 홀로 잡힌 오마르는 감옥에서 팔레스타인 죄수로 변장한 이스라엘 형사의 유인에 속아 “절대 자백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백하지 않겠다”는 말이 명백한 자백의 증거로 쓰이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오마르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 나머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것인지, 아니면 타렉이 총을 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형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나디아의 오빠이자 자신의 친구인 타렉을 잡는 데 협조할 것인가 하는 힘든 선택 앞에 놓인다. 적어도 형사들에게는 타렉을 찾는 데 보낼 짧은 석방기간 동안 오마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마르가 마주한 선택의 딜레마는, 나디아를 임신시켰다는 아므자드에게 화가 난 타렉이 몸싸움을 하던 중 사고로 죽게 되고, 죽은 타렉의 시신을 이스라엘 형사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동시에 나디아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아므자드의 말을 믿고 둘의 결혼을 맺어주는 것으로 나디아와의 관계도 끝이 난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후, 오마르는 자신이 아므자드의 거짓말에 속았었고, 의심의 벽 안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절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오마르는 과거의 일을 미끼로 밀고자로 일할 것을 협박하는 이스라엘 형사와 후회와 절망의 벽 안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오마르는 형사에게 총을 구해줄 것을 요청한다.

원숭이 이야기의 의미

영화에서 아므자드가 친구들에게 원숭이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밀림에 각설탕을 뿌려놓아 원숭이들을 설탕 맛에 길들인 후, 목이 좁은 구멍에 각설탕을 집어넣어놓으면 욕망 때문에 구멍 속 설탕을 움켜쥔 손을 풀지 못하는 원숭이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사냥을 당하는 원숭이가 오마르와 그의 친구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인지, 설탕을 움켜쥐고 손을 놓지 못하는 형사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인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문뜩 서안지구 안에 도로로 연결되어 들어와 있는 정착촌들의 형태가 원숭이 사냥에 필요한 구멍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숭 이 이야기는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르>는 이제 더이상 움켜쥔 손을 풀 선택마저도 갖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불법 정착촌 확대를 규탄한다!

최근 서안 지구 불법 정착촌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10대 소년 3명이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를 납치범으로 지목하고 서안 지구 전역에 대규모 공습을 비롯한 군사작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 단체들은 2014년 7월 9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 지구 공습과 불법 정착촌 확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불법 정착촌 확대를 규탄한다!

 

이스라엘이 또다시 가자 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하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는 이미 소집된 1500명의 예비군에 더해 4만명의 예비군을 추가로 소집하고 가자 지구와의 국경에 수십 대의 장갑차와 탱크 등을 배치하여 언제든지 지상전을 개시할 수 있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소년 셋을 살해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그룹을 척결하겠다며 이번 공습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세간에서는 이를 양측이 ‘폭력의 악순환’을 되풀이 할 뿐이라고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집단 처벌’일 뿐이다.
6월 12일에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헤브론 인근의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군락 ‘구시 에치온(Gush Etzion)’에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던 이스라엘 소년 세 명이 실종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삼일 뒤 하마스를 납치범으로 지목하고 서안 지구 전역에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그 결과 7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해 이 중 450명 이상을 구금 중이며 이 과정에서 수색과 체포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5명 이상 살해됐다. 이어 6월 30일 소년들이 주검으로 발견되자, 이스라엘군은 헤브론에서 납치살해 용의자 두 명을 알아냈다며 그들의 집을 수색한 뒤 폭파시켜 버렸다.
어떤 이유로든 소년들이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 소년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스라엘 소년들을 살해한 범인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소년들을 살해한 범인이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을 구실로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에 군사 작전을 행하는 이스라엘 측의 보복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한편, 이스라엘의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수 차례의 팔레스타인 주민 납치 시도 끝에 동예루살렘 난민촌의 소년을 납치하여, 소년의 몸에 불을 붙여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 일을 지켜본 뒤 이 사건이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자 이스라엘 수상은 매우 드물게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인이든 아랍인이든 테러 행위에는 차이가 없다며 양쪽의 테러에 동일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 당국의 대응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소년의 살해범이 밝혀지기 전, 이스라엘 경찰은 소년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 가족들에게 명예 살인을 당했다는 루머를 조직적으로 SNS에 퍼뜨렸다. 또한 이스라엘 경찰은 소년의 사촌을 무참히 구타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반면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소년들의 납치 및 사망 배경과 관련해 하마스가 그 배후에 있다는 혐의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 처벌을 계속하고 있다. 가자 지구를 공습하고 무인기로 테러하고 지상전을 예고하는 것이 과연 양쪽의 테러에 동일하게 맞서 싸우는 것인가?
팔레스타인 소년을 불태워 죽인 이스라엘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위 역시 결코 비호되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불법 정착촌 확장을 당장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해야 한다. 비극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한 뒤 팔레스타인 지역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의 이주를 장려하고 있다. 정착촌의 건설은 제4차 제네바 협약에 위배되는 행위로,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와 심지어 미국조차도 건설 중단을 요구해왔을 정도로 불법성이 현저함에도 이스라엘은 2013년에만 정착촌에 주택 2500채 이상을 건설하는 등 정착촌을 확대를 고수해 왔다. 이스라엘 군대에 보호되고 스스로도 무장한 불법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 살인 등 각종 범죄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불법 정착촌들과 이스라엘 사이를 이어주는 각종 유대인 전용 도로와 터널들은 그 자체로 팔레스타인 공동체를 갈라놓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소년들이 납치당한 구시 에치온은 이러한 불법 정착촌들을 이어주는 대표적인 교차점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수상과 국방부장관은 세 소년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겠다는 둥 소년들의 죽음을 구실로 문제의 원인인 점령과 식민화를 더욱 강화하려 들고 있다. 구시 에치온 지역의회는 자체적으로 두 곳의 불법 정착촌을 확장할 불법 초소를 짓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6월 12일 이후 이스라엘군과 불법 정착민들에게 살해당한 팔레스타인인은 이미 53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계속되고 지상전 투입이 예상되는 시점에 이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상자를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요구한다.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자행하고 있는 군사 작전을 즉각 중단하라.

 

  •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 확장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불법 정착촌을 철수하라.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점령과 식민화를 중단하고 1967년 점령한 팔레스타인 전역(동예루살렘, 가자 지구, 서안 지구)에서 즉각 철수하라.

 

2014년 7월 9일

경계를넘어, 국제포럼(준), 국제민주연대, 나눔문화, 노동자연대, 반전평화연대(준), 법인권사회연구소, 이론공동체 타흐리르(준), 인권연구소 ‘창’, 인권연극제, 인권연대, 전국학생행진,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현대 팔레스타인 땅의 영토 변천 역사

1897년 세계 시온주의 기구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설할 것을 결의한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복잡한 영토 변화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말로 설명을 하다보니, 쉽지 않아서, 보기 좋게 인포그라피를 만들었습니다. 제 창작은 아니구요. 이미 첨부파일에도 밝혔듯이,

❖ 이 통계 자료는 BBC.CO.UK, CNN.COM, ALJAZEER.NET, ISRAELIPALESTINIAN.PROCON.COM. LONDONTIMES.COM, NYTIMES.COM, WSJ.COM, UN의 자료를 근거로 GOOD MAGAZINE과 FIFTH COLUMN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CARTOGRAPHIC REGRESSION을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제 나름대로 약간의 그래픽 정보를 더하였으며, 저작권에 대해서 본사에 문의하였으나, 답이 없었습니다. 일단 인터넷의 여러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련한 싸이트들에서 이 정보를 소개하고 있으므로, 자료를 업로드합니다만,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 내릴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현대 국가 이스라엘의 영토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이해하는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팔레스타인 분쟁지역과 남북한, 참 많이 닮았다

오는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준비해왔던 남·북 공동행사가 개최장소로 인한 혼선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이번 문제의 기저에는 최근 몇 년간 다시 나빠진 남·북 관계가 깔려 있다.

민족 간의 깊어진 갈등의 골,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오마르>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읽으며,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남과 북에 어떤 점을 시사하고 있는지 바라봤다.

<오 마르>의 주된 배경으로 나오는 분리장벽. <오마르> 촬영팀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직접 분리장벽을 찍기도 했지만, 벽의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 판다미디어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그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 공격을 차단하고 주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2002년부터 요르단 강 서쪽에 장벽을 건설해왔다. 소위 ‘분리장벽’으로 불리는 이 벽은 총 길이 712km, 높이 8m에 달한다.

지난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 것으로, 이는 국제법에 어긋나며 철거돼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실제로 장벽의 대부분 구간에는 철조망이 있고 장벽 한쪽에는 도랑이 파여 있어 벽 너머로 넘나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기감지기, 순찰도로 등이 설치돼 있어 요르단 강 서쪽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 수만 명의 삶이 장벽에 의해 분리된 채 파괴되고 있다.

<오마르>는 이 분리장벽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팔레스타인 제빵사 ‘오마르’가 연인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분리장벽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친구 ‘타렉’과 ‘암자드’와 함께 자칭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일에 가담한 오마르.

하지만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잡혀 자백하지 않으면 징역 90년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것이라는 협박을 받게 된다. 오마르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결국 이중첩자가 되는 조건으로 풀려난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이중 첩자가 되면 바로 풀어주고 가족들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협박받고 있는 오마르.ⓒ 판다미디어

물리적 장벽은 심리적 장벽을 만들고

다시 바깥 세상으로 돌아온 오마르에게 사람들은 ‘큰 죄목을 안고서도 이렇게 쉽게 풀려났다는 건 이스라엘의 첩자가 됐기 때문’이라며 손가락질한다. 배신자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오마르는 사랑과 우정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분쟁 상황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다시 비밀경찰에게 붙잡혀 감옥으로 향하게 된 오마르는 이중첩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또다시 바깥 세상에 나왔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믿기 어려운 비밀과 거짓말을 접한다.

이처럼 영화 <오마르>는 주인공 오마르를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 세워진 분리장벽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사람들 간의 신뢰 관계를 무너트리는 변화까지 담아내고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일상의 평화를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오마르.ⓒ 판다미디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장벽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 우리나라의 3·8선도 그 역사에 있다. 분리장벽과 마찬가지로 3·8선 또한 6·25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한반도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3·8선으로 갈라져 버린 남과 북은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적인 거리까지 벌어졌다. 탈북자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나, 북한 사람들은 어떠할 것이라는 특정한 편견들은 남과 북의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방증한다.

어쩌면 요르단 강가에 우뚝 서 있는 분리장벽도 시간이 지나면 팔레스타인 지역뿐 아니라 벽 너머의 사람들까지도 갈라놓지 않을까. 영화 <오마르>에서 분단 70년을 앞둔 남과 북의 모습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오마르>의 감독 하니 아부 아사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라는 상황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우정 그리고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탐구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남과 북 또한 마찬가지로, 정치·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접근뿐 아니라 분단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도에 없는 이름, 팔레스타인

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성경 속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받는데 그곳이 가나안,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성경 속에서 유대인은 원래 가나안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가뭄과 전쟁포로로 이집트로 이동해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은 모세의 인도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대인들이 돌아왔을 때 가나안에는 정착해 살고 있는 아랍인(펠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당시 유대인과 아랍인은 함께 평화롭게 공존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유럽과 몇몇 국가로 퍼져나갔다.

 

유대인이 세계 각지로 퍼져 정착하는 동안 유대인에 대한 미움도 퍼지기 시작한다. 유대인에 대한 미움은 예수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팔레스타인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당시 유대인은 유일신인 여호와를 믿고 있는데 예수의 등장으로 그들의 신앙은 위협을 받게 된다. 예수는 당시 로마에게도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로마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예수를 투옥하게 된다. 유대교의 교리에 반하는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대교 제사장들은 로마에 예수의 십자가형을 주장했다. 예수가 세상을 떠나고 예수의 제자들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인정받고 유럽 전역에 확산됐다. 기독교가 유럽전역에서 득세하자 예수를 사지로 몰고 간 유대인들은 역풍을 맞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이어졌고 19세기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종교적인 이유 이외에도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의 자본에 대한 시기도 큰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세계 곳곳에 침투해서 살며 자신들만의 전통을 이어가던 유대인이 자신들 만의 나라를 건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발단은 1894년 프랑스의 ‘드레튀스 사건’이다.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는 증거도 없이 간첩죄를 뒤집어썼다가 프랑스 지식층의 구명으로 풀려나게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 일간지의 파리 특파원이었던 유대인 언론인 테어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유대 국가(1896)>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시오니즘(Zionism)운동을 시작한다. 시온(Zion)은 예루살렘 근처의 작은 산(다윗의 성지로 알려져 있으며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통한다)으로 시오니즘은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첫 시오니즘 운동이 개최된 후 대대적인 유대인 이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시온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유대인이 성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이를 민족주의와 결합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를 위한 억지 명분이라고 주장한다.

19세기 말영국의 개입 이전 유대인은 겨우 3% 기독교인은 9% 무슬림은 88%를 차지하고 있었다. 1905년 영국은 당시 영국으로 몰려드는 유태인들의 수용이 어려워지고 시오니즘을 주장하는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예상되자 식민지였던 우간다에 유대인 국가건설을 제안한다. 유대인들은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17년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분리벽

팔레스타인을 얘기할 때
말하게 되는
세 지역

최근팔레스타인 주거지인 서안 지구에서는 연이어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군인과 경찰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당국은 군인에게 칼을 휘두르다 총격을 받았다고 전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런 이스라엘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당사자들에게는 어느 쪽이 진실인가가 중요하겠지만, 왜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군인이 대면하게 된 것인지 애초부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왔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저항 단체이자 팔레스타인 집권당인 하마스가 충돌해온 또 다른 팔레스타인 주거지 지구의 상황은 어떨까. 가자지구는 지난 1년간 휴전 상태이지만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불리고 있다.

가자 (Gaza)

이스라엘 남서쪽, 이집트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가자지구는 원래 이집트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3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가자지구에 점령군으로 상주하던 이스라엘군은 2005년에 철수했지만, 여전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 선거로 선출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 공격을 감행하는데, 하마스가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만한 물자를 가능한한 가자지구로 들여보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때문에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기와 연료, 식량, 의약품 등 생필품이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서안 지구 (West Bank)

서안은 ‘요르단 강 서쪽에 있는 둑(West Bank)’이라는 의미다. 서안 지구는 국제법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영토이지만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군사력으로 장악한 후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고 보조금 등으로 이주를 독려했다. 문제는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 곳곳에 상주하고 있어 사실상 이스라엘 군사 통제에 놓여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꾸준히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있으며 분리 장벽 설치를 강행해 팔레스타인 고립시키고 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는 제네바 협약과 국제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라고 보고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주를 선택했기 때문에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Jerusalem)

약 3000년 전 이스라엘 왕 다윗은 2000년 이상 거주해온 가나안인(人) 에브스 부족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이곳에 성전을 짓고 살았지만 로마의 식민지가 된다. 로마 식민지 시절 예수가 태어나 기독교의 성지가 됐다. 이후 예루살렘은 7세기에 때 이슬람 칼리프 오마르 1세가 도시를 점령하면서 이슬람 도시가 됐다.

통곡의 벽(Western Wall)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성지인 예루살렘은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Western Wall)과 이슬람교 성지인 알 악사 사원(al-Aqsa Mosque),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 모여 있다.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서안지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축소판으로 여겨진다. 1967년 이후 유대인들은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의 수도로 선포했지만 여전히 국제법상으로는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도시다.

1,400
  :
8

Victims

2008년12월 27일부터 2009년 1월 18일까지 22일간 1,40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전투기는 2,500여 차례 출격했고, 전차 포병 함대 등으로 가자 전지역이 초토화됐다. 이에 대항하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778발의 수제로켓과 박격포로 응수했다. 1,40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살해당하는 동안 이스라엘인 8명이 희생됐다.

미국의 코믹저널리스트 조 사코(Joe Sacco)는 팔레스타인을 취재하며 보고 들은 것들을 만화로 그려왔다. 그의 만화를 보면 그래픽 노블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픽션을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과는 좀 차이가 있다. 오히려 그래픽 저널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01년 펴낸 <팔레스타인>은 9편의 만화 시리즈를 묶어 출간한 것으로 1987년 벌어진 ‘인티파다(이스라엘군 점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그려 19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받았다. 2012년 국내에 출간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은 1956년 가자 주민 학살과 2002년 이후 발생한 사건들을 넘나들며 설명하고 있다. 직접 목격한 것과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이 책은 가자 지구의 어제와 오늘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
(도서출판 글논그림밭)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은 그래픽노블로는 최초로 ‘진실을 말하는 기자들’에게 주는 리덴아워 상(Ridenhour Prizes)을 수상했다.

1956년 사건 기록들과 유엔의 문건들, 대담의 내용들을 부록으로 담고 있어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사건의 진실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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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독일과 유대인,2차 세계대전의 전범과 피해자. 두 국가의 각기 엇갈린 행보에 국제 사회 여론은 다시 쓰이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최근 시리아 내전 난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그간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상생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 반면 이스라엘은 과거에 고통 받은 만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대물림해주고 있다는 인상만을 주고 있다는 여론이다.

IPCRI, 아래로부터의 작은 움직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구·정보센터
IPCRI : Israel Palestine Creative Regional Initiatives

평화를 교육할 수 있을까. 평화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교육할 필요도 있다.

1989년 팔레스타인 정치지도자들과 이스라엘 좌파 지도자들의 협력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구·정보센터(IPCRI)이 설립됐다. IPCRI 사무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원 반반씩 이뤄져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화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연간 5천여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서로를 이해시키고 평화를 교육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인 배경에는 미국의 ‘이스라엘 껴안기’가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의 단합을 막을 수 있었고 중동에서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강대국들이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아직까지 아랍권이 분열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EBS 다큐멘터리 영화제 <EDIF>는 영화감독과 평론가들의 보이콧으로 <이스라엘 특별전>을 취소했다. 이스라엘도 분명 비극을 설명할 기회는 필요하겠지만, 영화조차 찍을 수 없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이라면 어딘가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관객들이 이스라엘의 시각만으로 팔레스타인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아이언맨> 같은 태도로 중동을 바라봐야할지 모른다.

팔레스타인이나 중동의 무장단체들이 자국민들에게도 위험하게 느껴질까.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보자. 한국의 독립운동가가 일본에서 테러리스트로 비춰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협정을 맺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의 지도 역시 크게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는 몇가지 방법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한해 3만명

그러나 이스라엘에 간다 해도 팔레스타인은 만나지 못한 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경이 아닌 만남을 위해, 국경을 넘는 여행과 경계를 넘는 만남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만나는 몇가지 방법을 공유해 본다.

 

ATG와 함께하는 경계를 넘는 여행 www.atg.ps

팔레스타인 대안여행 그룹 ATG(Alternative Tourism Group)는 보통 여행사들처럼 하루 여행 프로그램에서부터 성지순례, 가족여행, 모험을 즐기는 휴가 등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스라엘 호텔 대신 팔레스타인 가정집에 머물며 여행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만나도록 돕고, 이스라엘 정착촌에 찾아가 이스라엘 정부나 언론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여행을 만든다는 것.

01

올리브를 추수하는 여행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100만 그루 이상의 팔레스타인 올리브 나무가 뿌리 뽑히고, 300만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이 되거나 삶의 기반을 잃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인구 60만의 작은 나라에서 인구 550만의 나라로 성장했다. 2000년의 2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봉쇄와 극심한 검문, 농업 활동 방해 등으로 올리브 추수철이면 다 자란 올리브를 거두지 못해 엄청난 손실을 보고, 심지어 농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 현실을 지켜본 이들은 2002년 가을, 올리브 추수 캠페인을 시작했고 이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ATG는 동예루살렘의 YMCA, YWCA 등과 더불어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의 글로벌 익스체인지, 영국의 올리브 협동조합, 이탈리아의 생협 등 세계 각처의 수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 일은 시위도 집회도 아니었다. 다만 팔레스타인 농가에 머물며 함께 올리브를 추수한 것. 그들은 농부들의 집에 머무르며 함께 추수를 하고 밥을 먹고, 잔치를 열었다. 백인과 흑인, 동양인과 이스라엘인, 수많은 사람이 뒤섞인 올리브 숲을 향해 이스라엘 군인들은 총을 쏠 수 없었고, 그렇게 수확된 올리브 열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 올리브 오일이 되어 주었다.

한국에서는 2013년 9월, YMCA에 의해 한국 ATG가 협동조합으로 창립되어 다양한 대안적 성지순례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가고 있다.

ㆍ시기 : 매해 10월 ~ 11월 ㆍ기간 : 7일 ~ 10일 ㆍ장소 : 서안지구 올리브 농장

ㆍ프로그램 : 농부들과 함께 하는 올리브 추수, 난민촌 및 정착촌 주민들과의 만남,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는 여행과 만남,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가에서의 팜스테이, 예루살렘·베들레헴·헤브론으로의 역사·문화·정치․여행 등 다양한 만남과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평화의 여정.

02

희망의 올리브 나무를 심는 여행

2008년 봄, ATG와 평화단체들은 새로운 여행을 제안했다. 이번엔 올리브 나무를 심는 봄 여행이었다. 역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여러 단체, 농민들과 함께 하는 만남과 여행이다. 올리브 추수 여행이 절망을 거두는 여행이라면 올리브를 심는 여행은 희망을 심는 여행이다.

ㆍ시기 : 매해 2월, 일주일간 ㆍ장소 : 서안지구 올리브 숲 ㆍwww.jai-pal.org

03

막힌 담을 허무는 평화의 순례

ATG는 이스라엘의 남부부터 북부까지 예수의 흔적과 성지를 찾아 이스라엘 전역을 여행하는 10박 11일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 깊이 있게 성지를 묵상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는 순례의 여정이다.

ATG의 여행에는 과거의 이야기와 유적을 보는 것을 넘어 그곳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다. 헤브론에서는 평화운동가들을 만나 평화의 해법을 찾아보고, 유대인의 눈으로 보는 헤브론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베들레헴 외곽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들판의 삶을 경험하고, 베들레헴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시간도 갖는다. 아랍 기독교인들의 근거지, 나블로스를 방문해서는 성서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는 아랍 기독교인들이 처한 삶의 어려움과 그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성서의 땅이 살아있는 땅임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이 순례를 통해 성지 순례자들은 그들의 존재와 걸음만으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경청과 이해, 돌봄과 귀 기울임의 길을 내고, 여러 힘겨움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선이 아닌 여행을 통해 도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ㆍ시기 : 그룹 단위의 여행 요청이 있을 경우 (맞춤여행 형식)

ㆍ프로그램 : 10박 11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역 평화의 성지순례 프로그램

04

팔레스타인을 발견하는 여행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단기 여행자, 방문자들을 위해 하루 여행 프로그램.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장벽 너머에 숨겨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는 헤브론, 베들레헴을 둘러보는 하루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 참여하고 싶은 여행자는 이메일이나 전화 예약 후 예루살렘성 뉴게이트에서 8시 30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면 된다.

ㆍ프로그램 : 예루살렘성 뉴게이트에서 모여 헤브론으로 출발 – 헤브론의 고대 도시 – 아브라함 모스크 – 헤브론 안에 자리한 이스라엘 정착촌 – 유리 공예 작업장 방문 – 점심 – 베들레헴으로 이동 – 팔레스타인 난민촌(Deheisheh) – 빼앗긴 땅들 그리고 장벽 – 예수탄생교회 – 예수살렘으로 – 6시 뉴게이트 도착

참여비용 : 335NIS (약 100달러 / 이스라엘 여행사들이 진행하는 일반 관광 프로그램과 비슷한 가격이다.) 점심불포함(교통편, 전문가이드 포함 / 가정방문시 가정에 직접 지급)

‘두 국가’ 방안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이 기사는 2006년 8월 12일에 발행된 주간 <맞불> 7호에 실린 기사다. 이스라엘이 며칠째 가자 지구에서 학살을 벌이고 있고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지금, 진정한 대안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 볼 만한 글이다.


카나 대학살은 이스라엘이 지금껏 수많은 전쟁에서 저지른 끔찍한 야만의 전형적 사례다. 이 학살은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 즉 이스라엘이 다른 중동 국가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전 세계 좌파와 진보적 여론층의 많은 지지를 받아 온 팔레스타인 운동은 지난 30년 동안 ‘두 국가’ 방안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다.

두 국가 방안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두 개의 독자적 민주주의 국가 안에 평화롭게 공존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을 지낸 야세르 아라파트는 1993년 오슬로협정이 두 국가를 향한 일보전진이라고 평가하며 이스라엘과의 협정 체결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 이후 “평화 프로세스”의 경험은 두 국가 방안이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줬다. 먼저 양 진영 사이에 힘의 차이가 엄청나다.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가장 강력한 군사대국 가운데 하나다. 반면, PA(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조각난 영토에 대해 제한적인 통치력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유럽연합 같은 외부 세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 외부 세력들은 하마스의 등장 이후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PA를 계속 취약하고 외부 의존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이런 불균형을 영속화하겠다는 것이다.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무기력감을 이용하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사악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PA를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이유, 즉 유대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욕구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것은 위선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식민지 정착민 국가다. 다시 말해, 특권을 가진 외부인들이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원주민들한테서 영토를 빼앗아 건설한 국가다. 모든 정착민 국가들은 그들이 빼앗은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마주하기 마련이다.

정착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원주민들을 몰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수백 년 동안 천천히 진행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가 이 정책의 성공 사례다.

또 다른 해결책은 원주민들을 정착민들의 노동력인구로 전환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로디지아(오늘날의 짐바브웨)·케냐·알제리에서 이 정책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 정책은 쫓겨난 원주민들이 조만간 조직화해 영토를 되찾고 만다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앞선 모든 사례가 그러했다.

시온주의 식민주의자들은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중 대부분을 인근 지역으로 내몰았다. 나머지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증오하며 이에 맞서 저항하고 있으며, 이것은 아랍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영원히 불안정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쫓아낸 이들과 끝없이 전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결코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살할 수 없다. 나찌조차도 홀로코스트를 추진하는 데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구실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의 우익 정치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웃 나라들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아랍 세계의 반감을 증대시킬 뿐이다.

해결책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도 없다. 진정한 해결책은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만 명의 귀환을 허용하는 것뿐이지만, 이것은 배타적인 유대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릴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책’은 결국 속임수일 뿐이다. 이스라엘 전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한 이면에는 PLO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질서를 강요할 수 있는 비민주적 기구라는 냉소적 가정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약간만 진전해도 ― 예컨대 하마스의 총선 승리 같은 ―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 있다.

단 하나의 진정한 해결책은 PLO가 일찍이 1970년대 중반에 포기한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유대인과 아랍인,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평등하게 함께 사는,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 말이다. 지금처럼 대량 학살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것은 완전히 몽상적인 대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이 야만 때문에라도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팔레스타인 문제.

오늘날 아랍과 서구권 갈등의 핵심은 석유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1차 세계대전 직후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 당시까지 팔레스타인은 동맹국의 일원이었던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에서 수세에 몰리던 오스만은 대륙지배권을 상실하고 있었다. 당시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독립요구가 전쟁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오스만과 대립 중이던 영국은 팔레스타인에게 접근해 독립을 조건으로 오스만에 대항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맺게 된 것이 후세인 맥마흔 조약이다. 한 편 70년경 멸망해 나라없는 인종이 된 유대인들은 러시아의 학살이 자행되는등 세계적으로 인종적 핍박에 놓여 있었다. 유대인들은 원래 자신들의 본토였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것을 기원하게되고 유대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이 강력한 설득력을 엊게 된 것이다. 당시 로스차일드등으로 대변되던 유대인의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이들또한 자신들의 자본을 활용해 영국과 교섭을 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자치권을 약속하는 벨푸어선언을 하게되어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게 된다. 게다가 프랑스와 사이크스 피코 비밀조약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영국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어 자신들의 제국주의 확장 의도를 보이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종료후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아랍권이 공감을 받지만 영국은 산레모회의를 거쳐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공고히 한다. 이 떄 영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유대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아랍의 분노 시대가 열리게 되고 독일의 나치등장과 함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가 급증하게 되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갈등 양상이 전개된다. 아랍의 유혈폭동에 영국은 유대인들의 이민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마침 2차세계대전이 발발해 소강상태에 머물게 된다.2차세계대전 종료 후에는 이 지역문제의 키를 잡게 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 문제를 유엔에 넘기게 되고 연방안과 분할안이 대립하게 되는데 이 때도 유대인들과 유착관계인 미국등의 주도로 분할안이 채택되게 되고 1948년 드디어 이스라엘이 건국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이 치솟게 되고 네차례의 중동전쟁과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같은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지속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랜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라빈총리가 주도하여 땅과 평화의 교환이 추진되기도 하였으나 라빈이 암살되고 아라파트가 사망한 후 각 각 강경파가 집권한 두나라의 오랜분쟁은 그 해결이 요원한 실정이다.

당신은 이스라엘 편인가 팔레스타인 편인가?

이 글은 파키스탄계 캐나다인 작가, 약사인 ‘알리 A. 리즈비’가 허핑턴포스트US에 쓴 블로그 ‘7 Things to Consider Before Choosing Sides in the Middle East Conflict’를 번역한 글입니다. 알리 A. 리즈비는 ‘무신론자 무슬림’입니다.

가자지구 분쟁에서 한쪽 편을 들기 전에 고려해야 할 7가지 사항

당신은 친유대인인가 아니면 친팔레스타인인가? 난 오늘 양쪽 모두를 편든다고 비난받았다.

‘친유대인’이나 ‘친팔레스타인’ 같은 언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끈질긴 부족(部族)적 면모를 나타낸다. 다른 많은 국가 중에서도 이런 단어로 사람을 구분하는 곳은 몇 없다. 왜 하필이면 이 두 국가일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둘 다 매우 복잡한,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나라이면서도 아주 비슷한(따라서 분열을 자초한) 종교를 가진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을 옹호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대부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물론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왜냐면 그런 관점에서는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부족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얼마나 깊으냐 아니냐의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친팔레스타인 지지자가 만약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가족에서 태어났다면 그도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했을 테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원칙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느냐는, 그 사람이 어디 태생이냐는 태생적 우연에 일치해서 결정된다. 그러니 아무리 우리가 논리적으로 분석해봤자 중동분쟁은 원천적으로 부족적인 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 지지하는 편을 정하는 행동은 이런 분쟁을 더 부채질하고 사람들을 더 양극화시킨다. 그리고 가장 불행한 것은 결국 모두가 손에 피를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것을 결정하기 전에 아래 7가지 질문을 고려해보라.

***

1. 유대인이 개입되면 왜 모든 게 더 악화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가자에는 이미 700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전 세계의 무슬림 인구의 정신이 번쩍 깼다. 그렇지만 꼭 많은 피해자 수 때문일까?

시리아 대통령 바샤 알 아사드는 지난 2년 사이에 대부분 무슬림인 자기 나라 국민을 18만 명이나 사살했다. 지난 20년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해된 총인구보다 더 높다. 또 ISIS(이라크에 새로 선포를 선언한 이슬람 국가)는 지난 두 달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수천 명을 죽였다. 탈레반도 수천 명을 죽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아랍 무슬림이 50만 명의 흑인 무슬림인을 죽였다. 이런 목록은 끊임이 없다.

보통 때는 이렇게 반응이 전혀 없다가 가자지구의 문제에 대해서는 수니파든 시아파든 모든 무슬림이 자기의 의견을 맹렬하게 표현한다. 최신 사망자 수, 끔찍한 사진 같은 것들이 소셜미디어에 매일매일 즉각 올라온다. 단지 희생자 수가 중요했다면 다른 사건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유발하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된 건가?

내가 만약에 시리아의 아사드나 ISIS의 단원이었다면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BBC 기사에 따르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처참한 어린이들 사진 중의 일부가 정작 시리아 내전 사진을 퍼온 것이다. 태반의 경우 같은 무슬림인 아사드 손에 죽은 아이들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사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옹호하는 이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자신들을 옹호하는 편이 죽인 죄 없는 어린이의 사진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행위처럼 비겁한 것이 있을까?

이스라엘 군인의 무모함과 태만 그리고 때론 잔인한 행위에 대해 빌미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슬림의 반이스라엘적 태도는 꼭 사망자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나처럼 중동 또는 무슬림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만약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다 포기하고 1967년 전의 상황으로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에 다 넘긴다고 하자. 그럼 하마스가 더는 갈등을 안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가? 이 문제가 오로지 영토의 문제이고 그들이 유대인이란 사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영토점령이 부당하고 불법인 게 사실이다. 또 인권 차원에서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그렇지만 반면에 그들을 대척하는 세력의 깊은 반유대주의 이념도 부인할 수 없다. 아랍/무슬림 사회에 몇 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다 안다. 따라서 촘스키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쪽 다의 문제다.

2. 왜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종교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걸까?

중동분쟁 기원에 대해 세 가지 널리 유포된 설이 있다.

설 1: 유대교와 시오니즘은 아무 관계가 없다.
설 2: 이슬람교는 반유대주의나 지하드운동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설 3: 이번 분쟁은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난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것이지 유대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싶다. 현재 상황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아래 구약성경 구절이 우연일까?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대서양)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마라.” 출애굽기 23:32-33

또 이건 어떻고?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신명기 1:8

얼마든지 더 있다. 창세기 15:18-21과 민수기 34에는 영토와 경계에 대한 글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즉, 시오니즘은 유대교의 ‘정치화’나 ‘왜곡’이 아니라 그 종교의 부흥을 뜻한다.

또, “무슬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아래 코란 구절은 의미 없는 문구인가?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크리스천을 동지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그들끼리 동맹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들과 동지가 되면 그들에게 속하게 되느니라. 알라는 그런 죄짓는 자를 인도하지 않는다.”

하마스의 설립헌장에 인용된 수많은 하디스 구절은 어떻고? 그 유명한 가카드 나무에 대한 하디스 구절에 따르면 무슬림에게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제발 나에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수백, 수천 년 전, 즉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설립되기도 전에, 또 그 이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기도 전에 이런 문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고 종교와 관련이 없다든지 적어도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구절에 대하여 단순히 눈을 굴리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번 분쟁에 관련된 쌍방의 대다수는 이런 문구를 아주 심각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슈를 인정하고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지 않는가? 한 번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서안 지구 점령에 대하여 이해될만한 세속적인 논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신앙을 부인하고 오히려 정치행태만 비난하는 행위는 아마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그래서 믿는 이에 대한 모욕이 안 되게 하고자 하는 걱정에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비인간적인 이념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인가?

사람들은 별의별 믿음이 다 있다. 지구가 납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조작이었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질 권리를 존중할 수는 있지만, 그 믿음 자체를 존중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2014년이다. 꼭 누구의 정치사상이나 철학적 이상을 존중할 필요가 없듯이 종교도 더는 ‘존중’할 필요가 없는 시대다. 인간은 각자 권리가 있지만, 이념은 권리가 없다. 정치 종교의 분리 차원에서 자주 인용되는 아브라함의 종교 철학은 옳지 않고 잘 못 이해되기 쉽다. 왜냐면 아브라함의 모든 종교철학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3. 이스라엘이 왜 일부러 민간인을 죽이겠나?

거의 모든 사람을 흥분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이 문제다.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죄 없는 가자 주민들의 죽음은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주의로 해변에서 놀던 어린이 4명이 죽은 것은 더더군다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잠깐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이 ‘일부러’ 왜 민간인을 살해하겠느냐는 것이다.

민간인이 죽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무슨 괴물처럼 부각된다. 가장 밀접한 동맹국의 지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다치고 죽은 자의 모습이 미디어 화면에 넘친다. 뉴욕에서 노르웨이까지 반이스라엘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만 간다. 더군다나 비교적 낮은 이스라엘 피해자수(뒤에 더 구체적으로 설명)를 감안할 때 팔레스타인을 향한 공격이 불균형하다고 계속 지적받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인의 죽음은 하마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이는 게 어떻게 이스라엘 측에 득이 될 수 있느냐 말이다.

정말로 민간인 살해가 의도였다면 현재까지의 행동으로 봐서는 전혀 소질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2주가 걸렸지만, ISIS는 겨우 이틀간에 7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ISIS나 하마스에 이스라엘의 공격력, 즉 무기와 육군 공군 세력이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이스라엘은 옛날에 결단 났을 것이다. 거꾸로 이스라엘이 정말로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들었다면 단 하루에, 그것도 공중에서 초토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비싸고 또 자체 군사력을 위태롭게 하는 지상전을 선택했다.

4. 정말로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이용하고 있나?

하마스의 계략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에게 물어보자. 그는 “로켓을 쏘아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팔레스타인의 피와 맞바꾸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는 것은 더는 추측이 아니다.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리는 가자의 국영방송에 인간방패 작전이 이제까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런가 하면 유엔의 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UNRWA)은 두 개의 학교에 숨겨진 폭탄을 지난주에 발견하고 하마스를 맹비난했다.

현재 하마스는 수천 개의 폭탄과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퍼붓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입는 피해는 아주 작다. 그런데 이런 폭탄을 발사하는 지점이 학교나 병원을 포함한 인구밀집 지역이라는 것이다. 적에게 별로 피해도 주지 못하는 미사일을 계속 쏘아대서 자체 주민에게 오히려 위험이 오게 하고 정작 공격을 받으면 민간인을 방탄으로 삼는 것은 무슨 전략인가?

이스라엘군은 폭격 전에 대피하라고 경고 방송을 하건만 왜 하마스는 주민에게 대피할 생각 말고 그 자리에 남으라고 하나? 그건 민간인이 죽으면 하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하마스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존재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간인 시체다. 학교의 폭탄. 아이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세계의 동정을 산다. 이런 행동은 곧 아이들을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아도 하마스의 행태를 혐오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파타(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해 온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는 대립 주체이지만 적어도 도덕적 차원에서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하마스는 조금의 도덕성도 없다.

5. 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가자 ‘점령’을 중단하라고 하나?

그 이유는 사람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2005년에 가자 점령을 중단했다. 한 명의 군인도 안 남겨두고 그 지역을 빠져나왔다. 모든 이스라엘 거주지를 분해하고 자기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울부짖으며 맞선 유대인을 강제로 옮겼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가자를 둘러싼 경계, 해안지대 그리고 영공은 계속 이스라엘이 관리했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역사적인 배경을 감안할 때 꽤 획기적인 첫 단계였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모든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대피시킨 후엔 가자의 경제를 활성 시키고자 경계도 열었다. 그리고 수년간 성공적으로 꽃과 과일 수출을 주도하던 3,000개의 온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하마스는 학교나 상업은 물론이고 기초 인프라에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수천수만 개의 무기를 감출 수 있는 대규모 터널 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중 큰 부분이 이란과 시리아에서 넘어온 최신 무기였다. 모든 온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렇다고 하마스가 민간인을 위해 방공호를 만들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몇 개만 구축했는데 그건 하마스 지도자들이 공습을 피할 수 있게 한 준비 조치였다. 민간인에게는 이런 방공호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폭격 시에 대피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2005년은 가자에게 매우 좋은 기회였다. 즉, 지금의 반이스라엘 무기창고로서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번성하며 서안지구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기회를 하마스는 완전히 낭비했다.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인 파타가 하마스를 혐오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6. 왜 이스라엘보다 가자에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은가?

이스라엘 민간인 피해자가 더 낮은 이유는 이스라엘 주거지에 떨어지는 폭탄과 미사일의 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정부가 주민들을 더 잘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발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하면 우선 경보음이 울린다. ‘아이언 돔’이라고 시민 안보령이 개시되면서 지역주민들을 빨리 방공호로 대피시킨다. 그런데 이스라엘 측에서의 폭탄이 가자를 향하면 하마스는 주민들에게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맞서라고 지시한다.

즉, 이스라엘 정부는 주민들을 겨냥한 폭탄이 날아올 때 그들에게 빨리 피하라고 지시할 때 하마스는 주민들을 겨냥하지도 않은 폭탄이 날아올 때 오히려 그들에게 폭탄에 맞서라고 지시한다.

통상적인 변명은, 하마스는 재정이 나빠서 이스라엘처럼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할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 문제보다는 뒤섞인 하마스의 우선순위(위 5번에 설명한 이유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의지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폭탄과 미사일을 사들이고 터널을 뚫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하마스는 다른 무엇보다 그런 전쟁 물자를 먼저 준비했다. 그리고 재정 차원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다들 비난하지만, 하마스에게도 도움을 주는 수많은 석유 부호국이 있다.

민간인 피해가 감소한다는 것은 하마스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홍보전쟁의 주요 소재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의미다. 하마스는 두 가지 사항이 정 반대가 되기를 바란다.

7. 하마스가 그렇게 악하다면 왜 모든 사람이 친이스라엘이 아닌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엄청난 비난을 자초한다는 데 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부족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가자를 겨냥한 폭격을 아랍인들이 9/11 테러를 축하하듯이 반긴다유엔 보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고문하고 방패로 이용한 사례가 있다. 또 청소년을 폭행하고 무모한 공습도 계속하고 있다. 강간만이 원수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망언하는 이스라엘 학자도 있다. 그리고 일부 이스라엘 사람은 죄 없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죽음을 대놓고 좋아한다. 사실 이런 행위는 양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65년이 넘게 서로를 증오하도록 아이들을 양육한 결과다.

자신들은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근거 있는 말이 되려면, 자신들이 하마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일종의 국가적 자살의 길로 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점령과 영토 확장 때문이다.

영토 확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행위다. 아무도 그 이유를 이해 못 한다. 닉슨에서 오바마까지 거의 모든 미국 정권이 분명하게 반대해 왔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라는 핑계 외에는 어떤 타당성도 없으므로 그 행위가 종교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신빙성이 없다.

점령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 영국계 미국인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이 참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야만성, 신권정치, 핵무기 신권정치를 반대하는 축에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함께 서고 싶다면 절대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해서는 안 된다. 아주 간단하다. 유럽식이나 서구식 나라를 지향할 수는 있지만, 통치를 거부하는 사람을 억지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영토를 훔치는 행위를 계속해도 안 된다. 더군다나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의 입장을 잘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난 역사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무슨 늑대 무리 속에 갇혀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식의 발상을 부정한다. 그 나라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난 잘 안다. 엄청난 폭력과 탈환의 내막. 난 그런 지식의 포로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2005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완전 철수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추구하지 못하면(하마스 때문에 세 국가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달갑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 국가로 남을 것인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미국 외무장관 존 케리가 이스라엘이 미래에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을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계산이 뻔하지 않나. 유대인이 대다수가 아닌 지역에서 유대인 점령을 고집한다면 몇 가지 선택권이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탐탁지 않다.

***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주권하에 있다. 내 고향 파키스탄이 회교도 인구를 고려해 인도와 분리됐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1940년대 영국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도려내어 만든 국가다. 수백만의 인구이동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다. 이미 여러 세대를 거쳐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시민들은 정말로 그 땅을 조국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잔혹한 역사적 행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렇게 배우듯이, 이스라엘 아이들도 팔레스타인을 반대하도록 교육받는다. 이 비극은 양쪽이 ‘부족적’인 태도로 계속 자기편과 다른편을 고르는 한,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은 친이스라엘이나 친팔레스타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비종교적인 세속을 선택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주거지 점령과 하마스를 반대하면, 당신은 친이스라엘인 동시에 친팔레스타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은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편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후무스(병아리 콩으로 만드는 중동의 대표적인 요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즐겨 먹는다)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하라.

[정정 : 마지막 문장에 ‘후무스’에 대한 설명에서, 하마스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필자의 풍자라기보다는 이스라엘과 아랍계 국가들이 동시에 자신의 전통요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라는 독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

팔레스타인 분할안( – 分割案, United Nations Partition Plan for Palestin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181, 히브리어: תוכנית החלוקה)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후인 1947년에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유엔이 제안한 내용으로,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분할하는 안이다. 흔히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을 논할때 밸푸어 선언이나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논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오래된 물타기 전략이다. 서기 638년, 아랍인들이 당시 동로마 제국의 속주이던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래 그 땅은 13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랍인의 터전으로 유지되어왔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치하에서도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은 투르크인과 더불어 제국의 지배계층이었으며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해왔다. 저스틴 맥카시의 통계에 의하면 1900년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94%가 아랍인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초기에 유대인의 이주를 묵인하였고, 현지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점차 커지자 유대인들의 이주를 제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양측 모두로부터 불만을 살 뿐이었고, 팔레스타인 주둔 영국군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테러가 발생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전후 재건 문제만으로도 복잡했던 영국은 결국 이 문제를 유엔(UN)에 상정하였다. 유엔은 이를 받아들여 1947년 팔레스타인지역을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반씩 나누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 대해 유대인들은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 내(內) 아랍인들은 분노했다. 당시 인구비에서 아랍 인의 3분의 1,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게 이 분할안의 골자였다. 특히 지역 생계 기반인 올리브 농장과 곡창 지대의 80%, 아랍인 공장의 40%가 유대인에게 배정되었다. 이로써 경작 가능한 대부분의 비옥한 땅이 유대인 차지가 된 것이다[1]. 팔레스타인 내(內) 아랍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중동의 반미주의도 이때부터 싹트게 되었다. 아랍인들은 이 분할안 채택이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분할안은 미국과 소련 주도로 강행 통과되었으며, 영국은 기권하였다.

1948년, 영국이 이 지역의 통치를 포기하고 철수하자 유대인들은 분할안에 근거하여 땅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다.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 및 주변 아랍 6개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제1차 중동 전쟁이다.